Chapter 23

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1984년 4월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사업마저 뭉개졌습니다. 나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7, 8개월째 다니던 주안 장로교회 구역장과 전도사님들이 우리 집 사정을 알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던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면서, 마음에 결심만 하면 뒷받침이 되어 주겠다면서 권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목사님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권유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나는 마음의 준비 겸 기도를 위해 기도원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처음 간 기도원은 집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후에 다시 그곳에서 나와 친구 목사가 알려 주는 대로 한얼산 기도원을 찾기로 했습니다. 나는 마장동 터미널에 가기 위해 제기동에 내렸습니다. 마침 그날이 주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 원장, 그리고 최 장로, 정 간사, 이분들의 그 간곡한 권유가 가슴에 떠오르며, “한 번 가보자. 이 근처라지?”

그래서 물어물어 찾은 곳은 에덴성회, 나는 제단 바로 앞 어린이 놀이터에서 기다렸습니다. 아는 분들이 반겨 주더군요. 특히 하 원장님의 반가워하는 표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처음 본 예배의 모습은 초창기 전도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애절하고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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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희열에 찬 찬송가 소리, 단에 선 총회장님은 어쩌면 그렇게도 장로님과 같은지, 음성도, 제스처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흉내를 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예배가 끝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인사가 도리어 서먹서먹하기만 했습니다. 점심도 후히 대접받았습니다. 하 원장님께 솔직한 예배의 소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한얼산 기도원을 찾아가는 중인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원장님은 나에게 금식기도는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교통비까지 보태 주셨습니다. 금액의 고하를 떠나서, 그의 정성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기도원을 향해 산길을 돌아 올라가면서 나는 무수한 감상에 젖었습니다. 역곡의 조희성도 만나 보았습니다. 장로님을 하나님으로 하고, 자기는 무슨 주님이라고? 참으로 웃을 수도 없는 인간들이었습니다. 500만 원이면 천국 보장 운운하는 것이 대화의 가치조차 없었습니다.

다음 김순린, 그들이 사들인 9중앙에도 가보았습니다. 한참 수리중이더군요. 나를 안내하던 이 목사란 자의 말이, 단상을 바짝 밑으로 내려놓은 것은, 박 장로와 달리 김순린 종은 교만하지 않아서 단을 낮추었다나요.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 장로가 교만해서 단상이 높아진 것이 아니고, 2층의 교인들을 위해 부득이한 처사라고, 아래층에 사람이 차서 2층에 사람들이 올라가면 그때는 어쩔 테냐고 힐문했더니 무안해하더군요. 여하튼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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