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체면 불구하고 눈물을 닦고 또 닦아냈습니다. 가슴이 격해지고 어깨가 들먹여질 정도로 흐느껴지는데,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땅바닥을 치면서 통곡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길이 없었습니다. 아마 그날의 눈물을 그릇에 담는다면 한 되는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하 원장님께서 집으로 가서 같이 자고 새벽기도까지 참석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무조건 따랐습니다. 지금도 하 원장님의 그때의 그 사랑, 그 은혜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분의 그 따사로운 정성이 아니었던들, 결코 오늘의 ‘나’라는 존재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새벽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어제 저녁 집회보다 더 격렬한 마음의 파동이 일어나더군요. “저분이 분명히 제2의 감람나무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는 목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이 역사에 몸담아야 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예배를 마친 후 자청해서 총회장님께 인사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단상 밑 회의실에서 총회장님의 손을 잡고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총회장님, 무조건 돕고 따르겠습니다.”
그 후 나는 모든 것 제쳐놓고 총회장님의 집회마다 따라다녔습니다. 마침 수원 농장이 시작되면서 한 번도 빠짐없이 따라다니며 모든 것을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2개월 째 접어들면서 나의 마음속에 분명한 감람나무 체계가 심어짐을 느꼈습니다. 총회장님이야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