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

,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체면 불구하고 눈물을 닦고 또 닦아냈습니다. 가슴이 격해지고 어깨가 들먹여질 정도로 흐느껴지는데,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땅바닥을 치면서 통곡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길이 없었습니다. 아마 그날의 눈물을 그릇에 담는다면 한 되는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하 원장님께서 집으로 가서 같이 자고 새벽기도까지 참석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무조건 따랐습니다. 지금도 하 원장님의 그때의 그 사랑, 그 은혜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분의 그 따사로운 정성이 아니었던들, 결코 오늘의 ‘나’라는 존재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새벽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어제 저녁 집회보다 더 격렬한 마음의 파동이 일어나더군요. “저분이 분명히 제2의 감람나무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는 목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이 역사에 몸담아야 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예배를 마친 후 자청해서 총회장님께 인사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단상 밑 회의실에서 총회장님의 손을 잡고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총회장님, 무조건 돕고 따르겠습니다.”

그 후 나는 모든 것 제쳐놓고 총회장님의 집회마다 따라다녔습니다. 마침 수원 농장이 시작되면서 한 번도 빠짐없이 따라다니며 모든 것을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2개월 째 접어들면서 나의 마음속에 분명한 감람나무 체계가 심어짐을 느꼈습니다. 총회장님이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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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

분명한 감람나무이며 이긴자로서,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의 깊고 오묘한 섭리의 주역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또 호랑이 꼬리를 잡았구나.’ 싶어서, 몹시 기쁘면서도 다시 모든 생활에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 조금은 아쉬움도 없지 않았습니다.

10월이 되었습니다. 에덴성회 개회 10주년 기념예배가 진행되었습니다. 잃어버렸던 소망을 다시 찾은 이 너무도 벅찬 기쁨을 어디다 표현할 길이 없는 마음에서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많은 관장들, 그리고 교우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뜻과 같이 잘 받아주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몇몇 분들은 나의 진심의 소리를 받아주어, 지금 같은 소망의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나는 수없이 다짐했습니다. 제1의 감람나무를 열의를 다해 증거한 것처럼, 제2의 감람나무 역사에서도 나의 모든 것을 드려 증거해야겠다고 말입니다. 소망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수많은 감람나무 가지들에게 이 귀한 새 소망을 전해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드디어 12월 25일 성탄절을 기해서 전남 광주성회장을 하라는 특별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겨우 8개월이 된 이 어린것에게 너무도 중한 사명을 맡겨 주시니, 두려움도 없지 않았지만, 그 명령을 준행할 것을 결심하고, 지금 이곳 광주에서 앞선 역사에 몸담아 충성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한 제2의 감람나무의 역사를 전해 주려고 오늘도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힘이 드는군요. 하지만 내가 이 역사를 바로 깨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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