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진전도관에서 전도사 활동 중, 24살에 결혼을 하면서 잠깐 휴직했다가 다시 복직을 하게 되어, 1965년 강원도 진부로 다시 발령을 받아 전도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루 세끼 강냉이죽도 먹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때라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 전도관에 시온고등공민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고, 축구부도 만들어서 정규학교의 축구부 학생들과 시합도 많이 했습니다. 학교 건물도 손수 벽돌로 찍어서 2개의 교실을 건축하였고, 50여 명의 남녀 학생들이 모여, 비록 야간학교였지만 아이들이 성실하고 열의가 있어서 참 열심히 공부했고, 이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서 진부전도관이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진부에 가면 그 시절 손수 벽돌을 찍어 건축한 학교 교실 건물이 있는 것을 볼 때 감회가 어립니다. 진부전도관이 부흥이 되자, 이번에는 경남 거창을 거쳐 부산 해운대로 발령 받았습니다. 해운대에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하였으나,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둘이나 되었는데, 전도사 생활만으로는 도저히 생활고를 헤쳐 나갈 수 없어, 전도사를 휴직하고 서울로 올라와 일반 신도로서 전도관을 다녔습니다. 일반 신도로서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1980년대 들어오면서 박태선 장로님이 성서를 부정하고, 말씀이 처음과 달라지는 것을 보고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감람나무가 성서를 부정하고 교만해지면 어떻게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은 것이지, 박 장로님을 믿은 것은 아니지 않나?’는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