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지는 것이 너무나 아쉬워서 전필순 권사와 나는 전도관 마당에 서서 있는데, 북쪽 하늘에서 너무나 아름답고 구슬픈,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는 피리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전필순 권사와 나는 너무나 신기해서 말할 수 없는 감동에 복받쳐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영수 전도사님께서 나오시며, “북쪽 하늘에서 나는 저 소리가 들리는가?” 하시면서, 저 소리는 내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가슴 아파하는 성도들을 생각하시어서 우는 하늘의 소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으면 하늘도 감동시킨다는 말씀이 정말 맞는 말입니다.

1973년, 이긴자님께서 15중앙에 서서 설교를 하셨을 때, 주위의 관장들과 전도사들의 시기로 잘못된 보고를 받은 박태선 장로님은 이영수 전도사님을 도깨비로 몰았습니다. 박태선 장로님은 신흥전도관 식구들을 덕소신앙촌으로 불러, 도깨비에게 씌웠으니 축복을 받으라고 하며 성도들 몸 안찰을 해주셨습니다. 성도들 안찰이 끝나고 이태순 권사와 내가 남았습니다. 두 사람은 이영수 전도사 식사를 담당했으니 더 크게 도깨비에게 씌웠을 것이라며, 관장들과 전도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주시해 보고 있었습니다. 이태순 권사를 몸 안찰하던 박태선 장로님이 “오승민 관장 있어?” 하며 부르시니,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신흥 제단에서 헌금 들어온 것은 신흥 제단 빚 다 갚아줘.” 라고 말씀하시니, 우리가 도깨비에게 씌워 안찰 받을 때 어떻게 될까 하고 지켜보던 주위의 관장들이 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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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짝 놀랐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시고, 같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영수 전도사님이셨는데,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렇게 이영수 전도사님이 도깨비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앞선 역사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고 안 되었습니다. 이태순 권사와 나는 덕소에서 인천 집까지 오면서, 언젠가는 이영수 전도사님을 다시 뵐 수 있을 것이라며 서로 위로했습니다.

이긴자님께서 전도사로 계시던 시절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게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도 말씀의 깊이가 박태선 장로님보다 깊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받던 우리들은 이영수 전도사님을 박태선 장로님께서 부르셔서 크게 쓰실 줄 알았습니다.

이영수 전도사님이 신흥 제단을 떠나신 후, 신흥 제단 성도들의 은혜의 갈급함이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이영수 전도사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영수 전도사님을 뵈면 그곳이 어디이든 은혜가 오는데, 어찌 은혜에 갈급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과 은혜에 목마른 우리 몇몇 집사들은 휴직하신 이영수 전도사님과 가끔 연락을 하며, 밖에서 만나 말씀을 듣곤 하였습니다.

그러다 1973년 전도사님께서 “제2의 감람나무 역사를 따로 시작합니다.” 하시니, 우리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 뜻을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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