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아쉬운 것은 신흥전도관에서 전도사님을 열심히 보필하며 제단의 중추 역할을 하던 박현순 권사가 의심을 하여 함께 오지 않은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나를, 제2감람나무 역사가 만들어지는 처음부터 이긴자님께서 사랑으로 불러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게 은혜에 갈급했고 말씀이 그리웠는데, 에덴성회에 나와서 약 3년간은 신흥전도관에서와 같은 은혜가 없고,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 중에 이긴자님께서 오셔서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나는 울면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후부터 다시 은혜 연결을 받아, 오늘날까지 이긴자님을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에덴성회에 나오게 되면서 남편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정말 집안이 뒤집어질 만큼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1974년 2월 첫째 주일부터 나의 둘째 아들인 장무경 집사가 에덴성회 예배에 참석하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심한 반대와 핍박 속에서 둘째 아들을 주님께서 일찍 하나님의 역사로 인도하여 주시고, 내게 큰 힘이 되게 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에덴성회를 개회한 지 5년 후, 내 나이 54세 때, 자궁을 들어내는 큰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너무나도 송구스럽고 감사하게도, 이긴자님께서 병원에 오셔서 축복해 주시며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큰 수술을 받고 깨어났는데도 아픈 것을 몰랐습니다. 병원 간호사들이 진통제를 놔 주려고 주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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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들고 들어왔으나, 내게는 고통이 없어서 진통제 한 대도 맞지 않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퇴원도 수술 후 3일 만에 해서, 병원에서 놀라워했습니다. 퇴원해서 집에 와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잠을 잘 때, 또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 안에는 마치 참기름을 몇 병 부은 듯이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에덴성회에 나오지 않는 막내아들이, 하루는 내게 와서 생수를 달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무당집인지를 모르고 이사를 했는데, 무당이 가면서 갖은 악담을 다하고 가서, 집에 생수를 뿌리려고 한다고 그랬습니다. 나는 생수를 주며 “한 컵 마시고 집에 뿌려라.” 했습니다. 그 후 쓰고 남은 생수가 3년이 지난 지금(2007년)도 믿지 않는 아들집에 남아 있는데, 변치 않고 있습니다.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알곡성전에 들어와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닌데, 주님께서 사랑으로 인도해 주셔서 이곳에 집을 지니고 살며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정말 고맙고 기쁘기 한량없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나의 영이 주님께 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이제는 몸이 아파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이긴자님께서는 거룩한 하늘나라의 연회장 모형을 이 땅에 건축한다고 하시는데, 그 ‘천국연회장’ 건축에 못 하나 뽑지 못하고 쓰레기 하나 치울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주님께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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