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8. 권사 윤문섭

윤문섭: 1930년생. 일반 교회를 다니다가 1967년에 전도관에 나가며 은혜 체험을 하였다. 1973년부터 에덴성회를 나왔는데, 남편인 최현 장로가 이영수 총회장의 설교 말씀을 정리하여 16권의 설교집을 출간하였다.

출처: 간증담 2권(1987년), 계간에덴 25호(2008년 1월)

나는 대학교를 다닐 때 장로교회를 나갔습니다. 하루는 박태선 장로가 남산에서 부흥집회를 한다고 해서, 같이 대학교 다니던 동막교회 친구들하고 남산집회를 가 보았습니다. 박 장로께서 단상에서 설교를 하시는데, 남들이 “이슬이 내린다.”, “향취가 난다.”라고 얘기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전혀 그런 것을 보지도 못했고,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나는 과학적으로 얘기해서, “새벽에 이슬이 내리는 게 당연하지, 그게 무슨 대수로운 소리냐?” 하며 일종의 야유를 보내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 있는 고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해 갔습니다. 남녀공학이었는데, 학생도 많지 않았고, 교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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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정원보다 모자랐고, 학교 재정도 빈약해서, 나는 두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독일어와 영어를 강의하기로 했는데, 시국이 어수선한 시기라 26살 된 학생이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는 괜찮았는데,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짓궂게 장난을 걸어오는데, 나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만에 교사생활을 그만 두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난리가 났었습니다. 교사가 일주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하는 게 어디 있냐고, 지금 교직 자리가 없어서 사람들이 얼마나 어려워하는데, 라고.

일선 교사직을 그만두고 경기도교육청 문정과에 들어갔습니다. 문정과의 문화계는 체육, 종교, 문화 시설을 관장하는 곳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서울시교육청이 경기도교육청 산하에 있었습니다. 직원이 한 30명 정도 되었는데, 어떤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다 보면, 직급으로는 제일 말석이 아닌데도 뒤늦게 교육청에 들어간 관계로 말석으로 취급받았습니다. 토의를 할 적에는 과장, 계장 등, 소위 상관이 토론하고 나서, 나의 의견도 곁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참, 윤 선생은 사리판단이 올바르다.”고 칭찬을 해주고, 공감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경기도교육청 문정과에 있으면서 소사신앙촌에 시찰을 갔는데, 교인들이 광적으로 예배에 임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광란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시찰한 것에 대한 소감을 물어오기에, “내가 보기에는 광란 같아요. 그 사람들이 난리치는 게 뭣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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