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그 후 나는 최현 장로와 결혼을 했습니다. 처음에 남편은 불교도였습니다. 나의 친척들은 여기저기 교회에 장로도 있었고, 목사도 있어서, 결혼식을 정동교회에서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에 장관으로 계신 분에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겠다고 했는데, 남편이 고집을 부려서 조계사에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처음에 남편은 기독교에 대해서 완전히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병들고 나서 1963년쯤부터 감리교회에 좀 나갔습니다. 워낙 기독교를 반대하던 사람이었지만, 교회에 나가고 있는 중에, 친척 오빠가, “박태선 장로님 머리 위에 영광이 둘린다더라. 거기 한 번 가봐라.” 했습니다. 그래서 전도관에 가봤는데, 처음에는 그런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간 전도관에 다니다 보니, 박태선 장로님 머리 위에 달무리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이것은 참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누가 전도해 간 것도 아니고, 우리가 스스로 찾아가서 그런 소중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 후로도 동네에 있는 전도관을 다니며 신비한 체험을 자주하게 되었습니다.

전도관에서 서울에 제7중앙 제단을 건축하기 전부터 임원 구성을 하는데, 저는 서기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7중앙 제단 산하에 24지관이 있는데, 거기서 예배가 끝나고 나면 부인회 회의를 합니다. 서기는 그 회의를 기록하고, 지회마다의 출석인 수와 물품 판매대금, 전도인 수 등을 매달 상부에 보고를 했습니다. 그것을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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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기록하고 보고했더니, 박 장로님께서 “세상에 이렇게 보고서를 일목요연하게 잘 써주는 사람은 처음 봤다.” 하시며, “이 사람한테 이 만년필을 선물로 줘라.” 하여, 나는 부인연합회장을 통해서 만년필을 받았습니다.

전도관에서 지관에 나가며 갖가지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향취도 받게 되고, 박 장로가 단상에 서시면 머리에 영광이 둘리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향취가 뭐고, 이슬이 뭔지 처음에는 몰랐는데, 지관예배를 열심히 다니다 보니까 수시로 향취를 맡게 되고, 생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로구 중학동에서 살아서, 애들이 병나면 한국일보사 옆의 이선근 소아과에 다녔는데, 큰 아들(최원)이 감기로 주사 맞은 것이 쇼크를 일으켜 실신했다가 회복된 일이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최석)은 귀신이 붙었다고 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전도관에 나가고 나서는, 애들이 아파도 생수를 먹이고 예배를 보고 나면 병이 다 나았습니다. 남편의 건강도 좋지 않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지냈고, 아이들 3남매를 키우는 동안에 약이라는 것이 거의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람나무가 성서 상 둘이라는 사실과 전도관 체계의 악조건, 호조건은 성서의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박 장로님의 설교 말씀에는 가끔 비성경적인 데가 있어, 의문에 사로잡힌 채 전도관에 정착해 오다가, 박 장로님 사모님이 돌아가신 것과 박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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