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재혼으로 인하여 전도관에 대한 회의가 다시 일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박 장로님이 단상에서, “이 중에 구원받을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면서 멸망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시는 데는 혐오를 금할 수 없어, 우리는 관악산으로, 일석교회로, 삼각산 기도원으로 슬슬 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두 번째 감람나무 이긴자님에 대해 1973년 9월 하순쯤에 제15중앙 관장(안인순)이 전해 줘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이긴자님은 제15중앙 제단 단상에 두 번 서시고, 전도관에서 제명된 후, 가정집에 숨어 다니며 예배를 보았습니다. 남편이 이긴자님께서 인도하시는 가정예배를 처음 보고 와서는, “야! 나는 생전 처음 얼마나 감동의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더라.”고 했습니다. 내 남편 최현 장로는 고려대학교 철학과 출신이라 거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는데, 감람나무 이긴자님의 설교 말씀에 너무나도 감동을 받아 이긴자님의 예배에 계속 나갔습니다.
우리는 첫 예배를 본 날 밤에, 분별의 지혜를 주십사고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꿈에 스가랴서 3장 8절을 보라고 하면서, 우리 집 꽃나무에 떡잎이 졌던 것이 없어지고 새순이 돋아나서 꽃이 조화 있게 피어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남편에게 그림을 그려 설명을 하면서, 그분이 감람나무가 틀림없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전도관에서 훼방을 해서, 예배 장소가 번번이 바뀌어, 장소를 찾는데 애먹었습니다. 하루는 삼양동에서 예배를 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