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님의 재혼으로 인하여 전도관에 대한 회의가 다시 일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박 장로님이 단상에서, “이 중에 구원받을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면서 멸망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시는 데는 혐오를 금할 수 없어, 우리는 관악산으로, 일석교회로, 삼각산 기도원으로 슬슬 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두 번째 감람나무 이긴자님에 대해 1973년 9월 하순쯤에 제15중앙 관장(안인순)이 전해 줘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이긴자님은 제15중앙 제단 단상에 두 번 서시고, 전도관에서 제명된 후, 가정집에 숨어 다니며 예배를 보았습니다. 남편이 이긴자님께서 인도하시는 가정예배를 처음 보고 와서는, “야! 나는 생전 처음 얼마나 감동의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더라.”고 했습니다. 내 남편 최현 장로는 고려대학교 철학과 출신이라 거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는데, 감람나무 이긴자님의 설교 말씀에 너무나도 감동을 받아 이긴자님의 예배에 계속 나갔습니다.

우리는 첫 예배를 본 날 밤에, 분별의 지혜를 주십사고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꿈에 스가랴서 3장 8절을 보라고 하면서, 우리 집 꽃나무에 떡잎이 졌던 것이 없어지고 새순이 돋아나서 꽃이 조화 있게 피어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남편에게 그림을 그려 설명을 하면서, 그분이 감람나무가 틀림없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전도관에서 훼방을 해서, 예배 장소가 번번이 바뀌어, 장소를 찾는데 애먹었습니다. 하루는 삼양동에서 예배를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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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하나님의 사람이 “성경이 있으면 좀 주세요.” 하셔서 우리 장로님이 성경을 내밀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성경을 펴시더니, “이분도 두 감람나무에 대해 어지간히 줄을 그어 놓으셨군요.” 하셨습니다.

1973년 11월 17일, 성바오로병원 옆에 제단을 얻어 개관예배를 보는데, 전도관 전도사들이 많이 와서 입구를 지키며, 층계를 오르는데 손을 잡아당기며 제단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지 마라. 성경에, 이상한 증거가 있으면 알아보라고 했는데, 왜들 그러느냐?”고 호통을 치고, 제단 안으로 들어가 예배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에덴성회를 다니는데, 그때 제가 전도관에서 받을 돈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전도관에 공금을 입금하려고 이 전도사가 돈을 꾸어 달라고 하고, 저 전도사가 또 돈을 빌려 달라고 해서, 나는 그 사람들이 그래도 다 신앙인이고 목회자이니 믿고 내 개인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게 한 140만 원 됐었습니다. 당시는 그게 큰돈이었으므로, 그 돈을 받으러 전도관에 가느라 에덴성회에 잘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날 꿈에 내가 동사무소를 갔더니, 이긴자님께서 와 계셨습니다. 그때는 전도사님이라고 불렀는데, “어머, 이 전도사님이 동사무소는 무슨 일 때문에 오셨어요?” 했더니 “아, 누가 나를 믿어줘야지요. 그래서 신원증명 떼러왔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이영수 전도사님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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