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에 보여주신 곳에서 살았습니다. 이게 6.25동란 중에 부산에 있을 때 보여주신 장면입니다. (소사신앙촌은 1957년에 건설을 시작해서 1959년에 입주함)

또 같은 해에 이상 중에 알곡성전을 봤습니다. (알곡성전은 1987년에 건축됨) 주발봉 위쪽 높이, 공중에 떠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지금 상록회동산 자리에 큰 성전이 있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이렇게 첩첩산중에 교회를 크게 지으셨는데, 누가 여기에 교회가 있는 줄 알고 찾아오나!’ 하고 근심을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보니까 성전이 지금 알곡성전 있는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지금 성전 구조가 그때 본 것과 똑같습니다. 내가 ‘아, 이 첩첩산중에 누가 이 제단을 알아서 찾아올까!’ 생각을 하면서, ‘저 안에 사람이 얼마나 모였나!’ 하고 고개를 빼서 보는 데, 아무도 없고 문이 다 잠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하얀 아파트 두 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 ‘아마 직원들이 사는 집인가 보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사회에 아파트라는 게 없었습니다. (성전아파트는 1991년에 건축됨) 내가 그 꿈을 다 꾸고, 자다 말고 일어나서 ‘할렐루야!’ 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때는 신앙이 깊을 때였습니다. 불의 증거를 충만히 받았고, 은혜에 젖어서, 환자를 위해 기도하면 병들이 다 나았습니다.

이후에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충청남도를 가든, 부산을 가든,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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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교회를 가든, 가서 한 일주일 기도하면, 이상 중에 내가 불을 켠 촛대를 가지고 가서 강대상 가운데에 갖다 놓습니다. 그러면 그 교회가 석 달도 안 돼서 부흥이 일어나고, 교회 건물을 짓게 됩니다. 그렇게 가는 데마다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때도 보면 내가 이상 중에 하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전도관이 생기기 전에, 감람나무를 찾으려고 애를 쓰는데, 미국선교사가 남대문교회에 와서 기틀을 열었습니다. 남대문교회에 갔더니, 안내하던 박 집사님(박태선 장로)이 “어서 오십시오.” 하고 인사를 하더군요. 이날이 박 장로님을 처음 만난 날입니다. 박 장로님이 저에게, 예배 끝나고 찬양대 석에 앉아서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찬양대 석에 앉아 있는데, 거기에 남자 신학생들도 있고 여학생도 몇 있었습니다. 그때 박 집사님이 오셔서 기도를 했습니다. “여기 모여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 내가 주의 일을 하는 데 발판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 기도가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찬양대에 있던 사람들이 다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첫째 부활에 참석할 수 있는 일꾼들이 되게 해주시고, 내가 큰일 할 수 있도록 앞으로 발판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도대체 그 기도가 무슨 소리인가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그분을 통해서 은혜를 받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분이 거기 계시다가 창동교회(김치선 목사님이 중구 남창동에 세움)로 옮겼습니다.

그 후에 감람나무를 찾으려고 부흥회 하는 데마다 찾아다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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