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

기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성령이 몰래 임하였다면 장본인이 알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성령이 임한 여부를 말할 수 없을 터이니, 이 사도행전의 말씀을 누가가 마음대로 지어내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구차스럽게 옛날 일을 상상해 볼 것도 없이, 이것은 여러분 중에서 내가 이처럼 설교할 때 성령을 받아 본 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마음문을 열고 열심히 매달리면 이런 은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설교의 의미에 대해서 짐작이 갈 것입니다. 설교란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잘 쪼개어 영의 양식으로 양떼들에게 먹여 주는 동시에, 은혜를 끼쳐 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설교는 미리 성경과 신학 서적을 뒤져서 원고를 작성하여 그것을 읽어 주다시피 하거나, 거기 준해서 기계적으로 떠드는 그런 설교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학문 없는 자로 여겼으나(행4:13) 그들의 열변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주께서 이들의 입을 당신의 마이크로 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나 요한의 입을 거쳐 나온 말은 실상 주님을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성령의 조화입니다. 오늘날 신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내가 하나님의 깊은 말씀을 드러내고 또 여러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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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성령의 은사를 줄 수 있는 것도 이치는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는 물론, 다른 문도들, 가령 스데반 같은 사람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이적을 민간에 행하였습니다.(행6:8) 그리고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네 것 내 것 없이 지냈습니다.(행4:32) 이것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당시의 성령의 역사가 어떠했던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크게 일어난 성령의 역사가 결코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차츰 수그러지고 시들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마귀가 교묘히 가로막기 시작한 것입니다. 즉 처음에는 속수무책이던 마귀가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자 대책을 강구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 편에서도 손을 달리 쓰셔야 합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서도 바울을 내세워 새로운 법도를 전하게 하여,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의 은총을 확장시켰던 것입니다.

이때의 바울의 행적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렸지만, 바울을 따르는 무리들은 지난날의 어린이와 같은 순진성을 잃고 먼저 따지기부터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그만큼 영적으로 자랐기 때문이며, 이런 의미에서는 가상하다고도 하겠으나 은혜 받는 데는 오히려 불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진리를 숨기고 아이들에게 나타내며,(마11:25) 마음이 어린이처럼 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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