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저들이 이런 구원의 도리를 알 턱이 없습니다. 그들은 방언을 듣고 무척 신기해하면서 흥분하였습니다.(행2:5-8) 그리하여 방언을 하는 하나님의 큰 종들을 무척 부러워하게 되자,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 은사를 받으려고 여호와에게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방언의 은사를 받기는 했으나, 워낙 그릇이 모자라서 성령을 충만히 받지 못하여 따따뚜따 하면서 방언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자, 듣는 사람들이 횡설수설하는 사람 같다고 조롱했습니다. 방언에 부작용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역사가 덕스럽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는커녕 이만저만한 불영광이 아닙니다.
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지나 해가 바뀔수록 방언을 제대로 하는 사람보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어 하나님께 불영광이 날로 더해 갈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늘에서는 불가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자 바울은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뭇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어 방언의 은사도 내리게 한 그가(행19:6) 갑자기 이것을 뒤집고 방언 무용론을 전해야 할 입장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지시를 어긴다는 것은 더욱 안 될 일이고 해서, 할 수 없이 하나님의 뜻을 완곡히 전하여 서서히 거두게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