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

그러나 저들이 이런 구원의 도리를 알 턱이 없습니다. 그들은 방언을 듣고 무척 신기해하면서 흥분하였습니다.(행2:5-8) 그리하여 방언을 하는 하나님의 큰 종들을 무척 부러워하게 되자,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 은사를 받으려고 여호와에게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방언의 은사를 받기는 했으나, 워낙 그릇이 모자라서 성령을 충만히 받지 못하여 따따뚜따 하면서 방언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자, 듣는 사람들이 횡설수설하는 사람 같다고 조롱했습니다. 방언에 부작용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역사가 덕스럽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는커녕 이만저만한 불영광이 아닙니다.

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지나 해가 바뀔수록 방언을 제대로 하는 사람보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어 하나님께 불영광이 날로 더해 갈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늘에서는 불가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자 바울은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뭇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어 방언의 은사도 내리게 한 그가(행19:6) 갑자기 이것을 뒤집고 방언 무용론을 전해야 할 입장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지시를 어긴다는 것은 더욱 안 될 일이고 해서, 할 수 없이 하나님의 뜻을 완곡히 전하여 서서히 거두게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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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8

말을 하는 것이 일 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14:19) 우리는 이 대목에서 바울의 고충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섣불리 방언을 한답시고 이방인은커녕 자기 나라 사람들도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따따뚜따 떠들어대면 이건 참으로 난센스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또 성령을 넉넉히 받은 자가 이 방언을 통역하게 마련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국 사람에게 우리말로 얼마든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영어로 말해서 통역으로 내세운다면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방언을 자기 나라 사람에게 통역을 하는 것도 이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방언을 적극 만류하지는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 중에 방언의 은사를 받기를 갈망하는 자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은근히 타일렀습니다.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차서(次序)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 잠잠하고.”(고전14:27-28) 이것은 바울이 갑자기 방언 폐지론을 내세워 일어날 파동을 염려하여 한 말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방언에 대하여 매우 소극적으로 완곡히 말한 이면에는 앞에서 말한 그의 난처한 사정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만일 방언이 다 정말 덕스럽고 유익하며 하나님께 영광된 일이라면 바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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