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여러 가지 ‘왜?’에 대하여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있고, 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주께서 우리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주신 것이다. 우리는 애써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고, 누구와도 기꺼이 마주 앉을 기회를 갖고자 한다.

나는 이 설교집의 임자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 책이 모든 것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은 할 수 없지만―말해 줄 터이니까. 다만 그는 우리에게 심오한 말씀을 들려주고, 신령한 만나를 먹여 주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주의 종임을 부언해 두고자 한다. 그는 그동안에 일부 ‘목이 곧은’ 사람들로부터 조소와 중상까지도 달게 받아 왔으나, 이제는 그런 때도 지난 것으로 안다. 여호와께서 뜻이 계셔서 하시는 일인데… 누가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 땅에서 바로 우리 세대에, 여호와의 깊고 오묘한 섭리가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그리고 이 중대한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이 설교집에 내가 섣불리 사족(蛇足)을 다는 것도 부질없는 일 같다. 다만 필생(筆生)의 소임상 몇 마디 덧붙일 뿐―내 둔한 붓이 이 소중한 말씀을 잘못 전한 데가 있지나 않는지… 편달을 바란다.

1975년 4월 최 현

8 에덴의 메아리2권
Prologue

재판에 즈음하여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이다.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면서 크고 작은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다. 우리는 특히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일으키신 감람나무 역사에 가지로 부르심을 받아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듣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하나님께 다시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록된 성경 66권 중에는 사단의 눈을 피해 짐짓 가려놓은 부분이 적지 않으나, 이제 때가 때인 만큼 나중 감람나무의 입을 통해 그 전모가 드러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진리의 말씀은 설교집 ‘에덴의 메아리’로 계속 발간되고 있으나, 주님 당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좀처럼 깨닫지 못하여 이제야 재판이 나오게 되었다. 몇 군데 잔손질을 한 것은 이미 간행된 설교집 전체와의 유기적인 연결을 위해서이다. 이 설교집의 재판을 위해 수고하신 윤상학 박사님께 감사하는 바이다.

2004년 6월 최 현

에덴의 메아리2권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