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룩해지고, 제단이 거룩하면 성전도 거룩해지게 마련이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전의 주인공은 성도들이고, 제단의 주인공은 제사장, 곧 목회자로서, 성도들에게는 성전을 거룩하게 하는 책임이 있으며, 목회자에게는 제단을 거룩하게 하는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성전 밖의 마당은 이방인에게 주었으므로 척량하지 말라고 하였다. 여기서 ‘척량’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성전과 제단이 얼마나 거룩하며, 성도들의 신앙 단계가 어느 정도인가를 척량한다는 뜻이다.

“내가 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척량줄을 그 손에 잡았기로,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척량하여, 그 장광(長廣)을 보고자 하노라.’”(슥2:1-2)는 척량이 그렇고,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갈대를 가졌더라.”(계21:15)는 척량도 그렇다.

여기 보면 성전 밖의 뜰은 이미 이방인에게 주었으니 척량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곳은 이방인이 지배하는 곳이며 마귀가 차지한 지역으로 하나님께서는 직접 관여하시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역사하는 범위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 이외에는 하나님께서 돌아보지 않았으며, 신약 시대에 와서는 불신자나 성령을 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과 직접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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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여기서 이방인에게 준 뜰을 척량하지 말라고 한 것은, 척량해 봤자 건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에게 속한 성전과 제단 및 성도들을 척량하라고 했는가?

이때는 하나님과 마귀와의 영적인 3차 전쟁, 즉 아마겟돈 전쟁의 시초로 마귀에게 속한 이방인이 하나님의 산하에 쳐들어오려고 하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여 하나님의 병력 ― 의로워진 정도 ― 을 상세히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거룩한 성’이나 ‘이방인’은 영적인 뜻으로, 하나님의 편과 마귀의 편을 비유해 말한 것이다.

이방인은 거룩한 성으로 침입해 들어오게 된다. 하나님의 편에 의로운 자의 수가 차고 넘치면 어차피 도전을 받게 되므로, 선수를 써서 하나님의 병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럼 어찌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수가 차기 전에 마귀가 전면 공세를 취하지 않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마귀가 싸우는 규례상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은 의로운 자의 수가 찼으므로 자신이 생겨 마귀에게 자기 백성들을 내어준다. 그 기간이 마흔두 달 동안이며, 이 기간이 지나면 마귀들을 다 꾀어내는 것이다. 마흔두 달은 3년 반, 곧 한 때, 두 때, 반 때이며 마귀가 지배하는 시기이다. 다니엘서에는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7:25)고 했다. 그럼 이 기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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