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창19:28)과 우상 숭배의 본거지인 애굽과 최악의 살인죄를 범한 골고다의 언덕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 세 곳에 한때 온 세계의 마귀가 총집결했던 것처럼, 모든 악령이 이 성에 총동원되어 일대 격전을 전개하게 된다. 마귀는 이 전쟁에서 마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자기가 이겼다고 자부했던 것처럼, 두 증인을 죽이고 승리를 거둔 줄 알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다. 한 때, 두 때, 반 때가 지나자 두 증인이 살아났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결국 이 전쟁은 하나님의 승리로 돌아가기 마련이다.(계17:14)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11:9)

두 증인이 마귀에게 죽임을 당한 곳은 영적으로 말하면 악이 크게 역사한 소돔과 애굽과 골고다이며, 거기에는 여러 나라의 많은 백성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 구경하게 된다. 여기 ‘방언’이란 문자 그대로 사투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 말을 의미하며, ‘시체’란 사람이 죽은 송장으로 해석할 수 없다. 천년세계가 지난 후의 일이므로, 두 증인은 이미 영체(靈體)로 화해 있으며, 엄밀한 의미에서 영체에는 죽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영체도 어떤 형태는 갖고 있다. 그러나 그 형태는 투명체로, 찔러 죽이거나 쏘아 죽일 수는 없다. ‘사흘 반’은 7의 반으로, 세 때 반을 가리킨다.

우리 몸이 이런 영체로 홀연히 변화되는 것이다.(고전15:51-52) 그렇게 되지 않고 육신을 입고서는 천년세계에 들어갈 수 없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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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어 있다.

그럼 이 ‘시체’는 어떻게 된 것인가? 그것은 두 증인의 권세가 한동안 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깨어진 권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기간이 사흘 반, 즉 마귀가 마음대로 활동하는 기간인 한 때, 두 때, 반 때이며, 여기 사흘 반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찍이 다니엘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단12:7)

두 증인의 시체를 장사지내지 못하는 것은, 마귀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체까지도 사흘 반 동안 완전히 마귀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모세의 시체를 놓고 하나님의 신과 악령이 서로 자기 손에 넣으려고 다툰(유1:9) 고사(故事)를 상기하게 된다. 하나님의 편에 온전히 선 사람이고 보면, 시체도 이와 같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다윗은 말하였다. “저희가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며,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면에 물같이 흘렸으며, 그들을 장사하는 자가 없었나이다.”(시79:2-3)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11:10)

두 증인의 권세가 깨어진 것을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땅에 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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