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그럼 왜 이와 같이 사랑의 차원(次元)이 달라질까? 그것은 여호와께서 마귀와 싸우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구약 시대는 육과 육의 싸움이 전개되지만, 신약 시대는 인간의 혼을 놓고 양자가 겨루는 것이다. 구약 시대는 하나님의 백성이 적에게 한 번 얻어맞으면 두 번쯤 때려야만 하나님에게 영광이 돌아가고, 하나님의 백성이 적에게 얻어맞고도 가만있으면 하나님의 위신이 깎이는 것이다. 이렇듯 여호와와 마귀의 싸움에서 육이 이기면 하나님이 이기는 것이 되고, 육이 지면 하나님이 패배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원수를 사랑하면 지옥을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여호와가 당신의 백성을 어떤 이방 민족과 싸움을 시킬 때 적의 몰살을 명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구약 시대는 원수에 대하여 무자비하기 짝이 없고, 이웃에 대해서만 자애로웠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들어오면 사랑의 차원이 하늘과 땅만큼 달라진다. “내가 사람의 방언(方言)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13:1-2) 이것이 곧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그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곧 성령을 놓친 것을 의미한다.

오순절 날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며 불이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더니 성령을 충만히 받았는데(행2:1-3) 그 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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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많은 사람들은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 이를 저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서 사랑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에베소 교회의 목자와 그 신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께서 에베소 교회의 목자를 칭찬한 것은 대수롭지 않은 외적인 일이요, 그가 가장 소중한 사랑, 즉 성령을 잃었으므로 책망을 했던 것이다. 신약 시대에는 외형적인 행위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이 성령과 무관한 인간의 소행이라면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

초대 교회 때에 성도들끼리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각자 자기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쓴 것(행2:44-45)은 성령의 감동에서 비롯된 사랑의 발로였다 .

그런데 에베소 교회의 목자와 신도들은 이런 참사랑을 잃고, 모세의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것을 능사로 삼아, 잘 참고 견디며 게으르지 않았으나, 주님의 책망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께서는 사랑이 어디서, 어떻게 해서 떨어져 나갔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회개하라고 타일렀다.

에베소 교회의 목자와 신도들은 행위로는 탓할 것이 없을 뿐더러, 칭찬할 만하였다. 모세의 율법에 그토록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위가 아무리 온전하여도 새 율법, 즉 자유의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그야말로 ‘소리 나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일찍이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시작된 에베소 교회는, 이처럼 자유의 율법을 저버리고 모세의 율법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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