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란 니콜라우스의 추종자들을 말하며, 사도행전에 보면 니콜라우스는 안디옥의 개종자(改宗者)로서 집사였으며(행6:5) 정통적인 신앙을 떠나 이단자가 되었던 것이다. 버가모에 보낸 편지에 의하면, 이들 무리는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간음을 하게 했다.”(계2:14)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니골라당은 신성한 교회 안에서 세상과 짝하여, 다른 신도들을 곁길로 이끄는 역사를 하였기 때문에 주께서 미워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도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않는 자’의 재앙에 대하여 경고하고(롬2:8) ‘당을 짓고 … 수군수군하는 것’을 배격하였다.(고후12:20)

여기 분명히 주님은 이런 가로막는 역사를 미워한다고 잘라서 말씀했다. 이와 같이 주께서 미워하는 일을, 인간이 좋아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당을 짓는 무리도 그들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께서 싫어하는 일이라면, 큰 범죄가 되는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서, 설령 인간의 견해로는 주님에게 합당한 일같이 생각되어도, 주님 보시기에 못마땅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여호와를 섬기노라고 애를 써도, 주께서 외면하면 헛수고가 될 뿐더러, 큰 범죄가 되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에서 니콜라우스의 주장을 따르는 무리들이 이런 이치를 알았을까? 몰랐던 것이다. 알았다면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하여 알 수 없었을까? 주께서 에베소 교회에 은혜는 연결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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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줘도, 바울처럼 성령을 충만히 받아 하늘나라의 사정을 직접 가서 목격할 만한 주의 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스가랴 선지자 시대의 대제사장 여호수아나 총독 스룹바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호와께서 이 두 분을 특별히 기억하기는 했으나, 결코 동행하시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어떤 지시를 내릴 경우에는 선지자 학개나 스가랴를 통하기 마련이었다. 에베소 교회에 주와 직접 의사소통을 할 만한 주의 종이 있었다면, 구태여 사도 요한을 들어 쓰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런 주의 종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되는 것이다.”(슥4:6) 그러니까 인간이 1년 365일 동안 금식 기도를 하며 매달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주셔야 되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에 사도 요한을 통하여 지시가 간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아무리 왈가왈부해 보았자, 보고 듣고 받은 자 이외에는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하늘의 일은 땅의 일과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주께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고 말씀했는데, 여기 이 ‘귀’는 물론 땅의 소리를 듣는 귀가 아니라, 하늘의 소리를 듣는 귀를 가리킨다. 즉, 그것은 육의 귀가 아니라, 영의 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령의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 말이다. 욥기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異像) 중에 사람의 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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