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책머리에

- 성경으로 돌아가자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스승들은 한결같이 하늘과 땅의 이치를 찾고, 살아가는 도리를 구해 왔으며, 이들의 가르침은 오늘날 뭇 사람들에게 직접 간접으로 적지 않은 마음의 양식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은 거의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좀 더 참되고 보람 있는 한 세상을 보낼 수 있느냐 하는 데 그치고 있다. 석가가 그렇고, 공자가 그러하며, 소크라테스나 칸트, 그 밖의 또 누구누구의 여러 가지 가르침도 다 이 테두리를 별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들도 때로는 영원한 생명 같은 것을 논해 보기는 했으나, 이것은 몸으로 우리에게 똑똑히 보인 것이 아니라, 모두가 머리로 짜낸 아리송한 속짐작이요, 따라서 우리가 기대어 설 만한 것이 못 된다.

우리는 문제를 다시금 올바로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끈기 있게 추구해야겠다.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것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의 가장 큰 궁금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앞

6 계시록강해
Prologue

의 물음은 이왕 지나간 일이라 덮어 두더라도, 나중 물음은 우리가 조만간 당해야 할 일이므로 덮어 둘 수 없다. 즉, 죽음은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자, 최대의 적이다. 그리고 이 불청객은 언제 우리를 찾아올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평소에 죽음을 줄곧 의식하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까맣게 잊어버리고 희희낙락, 오늘을 요리하고 내일을 설계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노작들은 크든 작든 간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는 솔로몬의 말 그대로, 때가 되면 죽음이 송두리째 삼켜버려, 금세 무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인류의 비극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절망과 불안, 고뇌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부터 얻어 놓고, 그 터전 위에서 70이나 80의 한 생애를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 ‘무’에서 놓여나는 길은 없을까?

이것은 우리의 지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자고로 인류의 우수한 두뇌가 총동원되다시피 하여 이 문제를 줄기차게 추구해 왔으나, 철학적으로는 아직 이렇다 할 만족스러운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것은 신앙 안에 들어와 직접 체험해서 말씀과 부합시켜 깨달아야지, 인간의 머리로 이론을 따져 풀이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겠다.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 인류에

계시록강해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