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즉, 그 영은 매우 곤고하고, 생명길에서 떠났으니 가련하며, 은혜가 없으니 가난하고,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니 눈이 멀었으며, 몸은 비단옷과 금은보화로 장식했으나 영적으로 벌거숭이나 마찬가지인데, 딱한 일은 자기 자신이 그런 비참한 꼴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형편이다. 이것은 무지 중의 무지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金)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3:18-20)

이 말씀도 처음부터 끝까지 비유로 되어,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연단하는 이 ‘불’은 성령의 불이며, 사들이는 ‘금’은 빛나는 신앙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고, 몸에 걸쳐야 하는 ‘흰 옷’은 주의 보혈로 씻긴 영의 옷이요, 보게 하는 ‘안약’은 영의 눈을 뜨게 하는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주께서는 이와 같이 권면하고 경고한 다음에, 회개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회개란 진심으로 자기가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그 죄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 시대에 자유 율법을 지켜야 하는 신도들은 본의 아닌 죄과를 눈물 뿌려 회개할 때, 용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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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회개하고 마음의 문을 열 때, 주께서 동행하여 은혜 가운데 거하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생활에 회개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알 수 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3:21-22)

“보좌에 함께 앉는다.”는 말씀도 영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만일 이 말씀을 육적으로, 즉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한 의자에 하나님과 주님, 그리고 이긴자까지 겹쳐 앉는다는 뜻이 되어 어색하기 짝이 없는 해석이 나온다. 하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비몽사몽간에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고 했으며,(행7:56) 또 성경의 다른 데도 주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기록한 것이 있다.(막16:19, 눅22:69) 이것은 주께서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으로 계시며, 두 분 사이의 거리가 가깝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알기 쉽게 표현한 말로서, 예컨대 학교에서 교감 옆자리에 교무 주임이 앉듯이, 실제로 주님이 바로 여호와의 오른쪽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먼저 보좌가 무엇인지 알아야겠다. 여기서 말하는 보좌란 하나님이나 주님이 앉는 의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의자를 포함한 하나의 그룹, 즉 체제 전체를 통틀어 의미하는 것이다. 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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