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경우에, 거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에도 숨은 인과율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도 역시 과학적인 측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은혜를 쏟았거나 숫제 받지 못할 때에는, 그 원인을 찾아내어 시정할 것을 시정해야 합니다. “너의 사랑이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라.”(계2:5)는 말씀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을 부어주는 하나님의 종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하나님의 종은 자주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초대교회 때 바울과 베드로, 그리고 사도 요한이 성령을 부어 주었고, 오늘날 이긴자를 통하여 이 땅에서 보혜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종을 만나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사55:6)는 말씀은 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분은 이렇게 항의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린 속죄의 제물로 말미암아 누구나 주님과 직접 영적으로 교류하게 되어 있으며, 따라서 성령도 직접 받도록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종’은 왜 필요하냐고 말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또 성경에는 회개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행2:28) 그런데 이렇게 해서 성령을 받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또 설사 성령을 받았다고 해도 크게 힘을 못 쓴다는 것은 여러분이 체험을 통해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또 여러분뿐만 아니라 앞선 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