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은 당신의 크신 뜻을 위해 작은 희생을 무릅쓴 처사라고 하겠습니다. 그 크신 뜻이란, 전에도 말했지만, 마귀의 세력을 소탕하고 복된 하늘나라를 이룩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지난 6천년 동안에 움직이신 모든 역사는 오직 이 뜻을 이루기 위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여리고성을 함락시켰을 때 ‘육체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무서운 위력(偉力)을 과시하여 당신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당신을 두렵게 섬기는 계기를 마련하셨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군대가 될 자격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기르려고 하셨으며, 이 경우에 다소의 희생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여호와의 부득이한 일이며, 여호와의 본의는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박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렘22:3)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여호와의 뜻을 모르면 구약에 나오는 무자비한 많은 살육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깊은 사정을 도외시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그 행적을 헤아리면 기독교 자체를 곡해하기 쉽습니다. 많은 사상가나 학자들이 기독교를 외면하는 이유의 대부분이 이런 데 있는 것으로 보아도 저간의 소식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들도 죄를 저지르면 가차 없이 벌을 내렸으며, 이방인은 마귀의 편에 선 자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서슴지 않고 처단하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