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

사도 요한이 다니엘보다 몇 곱절 더 무서운 계시를 보고도 끄덕하지 않은 것은 지켜 주는 성령의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의 주의 종도 보혜사 성령이 지켜 주지 않으시면 감당하지 못합니다.

내가 누누이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에덴성회는 한 교파가 아니며, 여느 교회와는 다릅니다. 마귀가 우리 식구들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그렇습니다. 즉 마귀는 여러분을 제일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알게 모르게 괴롭히려고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자주 체험할 것입니다. 마귀는 무엇 때문에 여러분을 그처럼 미워할까요?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총이 강하게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 중에 마귀의 도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을 반성해 보면 잘 아실 것입니다.

식구만 늘면 일단 부흥한 것으로 알았다가는 오산입니다. 교인의 수가 늘어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심령이 다듬어져 변화되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양(量)보다 질(質)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이는 숫자보다 깨끗한 심령을 귀히 여기십니다.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주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조금만 짐이 무거우면 곧 벗어 동댕이치려고 하고, 상대방의 언동이 조금만 비위에 거슬려도 토라지는 따위의 성격은 고쳐져야 합니다. 사랑은 기독교의 대강령(大綱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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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

하고 상대방을 사랑하기는 고사하고, 미워한대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너는 없어도 나만 있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요컨대 주가 내 안에 있으면 그만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전력투구(全力投球) 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칭찬을 받아도 주님이 몰라주신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눅16:15)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은 하나님은 물론, 사람에게도 칭찬 받을 만한 존재가 못 된다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역시 누구나 명심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혜 가운데 있다고 해서 성령이 “꽁치만 먹고 갈치는 먹지 말라.”는 식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감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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