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언동이 바울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바울은 기가 막혀, “누가 자비량(自備糧)하고 병정(兵丁)을 다니겠느냐? … 우리가 너의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전9:7-11 참조)고 이들에게 반문하고, “이런 권리를 쓰지 않고 범사에 참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서 낳았다.”(고전4:15)고 자부한 고린도 교회 신도들에게, 다시 말해서 영의 젖으로 자식들을 기른 어머니가 그 자녀들에게 하는 책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마음을 이처럼 섭섭하게 한 건 이뿐만이 아닙니다. 당시의 바울은 주로 배를 타고 고린도 교회까지 전도 여행을 다니느라고 약간의 전도비가 들었는데, 이것을 일부 인사들이 비용이 많다 적다하며 물의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마게도냐 교회의 신도들은 어려운 중에도 풍성한 연보를 하여 하나님의 사람의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정성껏 밀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힘겹게 자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한 것을 치하했습니다. 그가 베드로와는 달리(고전9:5) 일생을 독신으로 마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긴 큰 사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도, 심심찮게 비난의 대상이 되어 남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2:15)는 바울의 말은 이들을 겨냥한 설득이자 경고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