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언동이 바울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바울은 기가 막혀, “누가 자비량(自備糧)하고 병정(兵丁)을 다니겠느냐? … 우리가 너의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전9:7-11 참조)고 이들에게 반문하고, “이런 권리를 쓰지 않고 범사에 참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서 낳았다.”(고전4:15)고 자부한 고린도 교회 신도들에게, 다시 말해서 영의 젖으로 자식들을 기른 어머니가 그 자녀들에게 하는 책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마음을 이처럼 섭섭하게 한 건 이뿐만이 아닙니다. 당시의 바울은 주로 배를 타고 고린도 교회까지 전도 여행을 다니느라고 약간의 전도비가 들었는데, 이것을 일부 인사들이 비용이 많다 적다하며 물의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마게도냐 교회의 신도들은 어려운 중에도 풍성한 연보를 하여 하나님의 사람의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정성껏 밀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힘겹게 자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한 것을 치하했습니다. 그가 베드로와는 달리(고전9:5) 일생을 독신으로 마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긴 큰 사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도, 심심찮게 비난의 대상이 되어 남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2:15)는 바울의 말은 이들을 겨냥한 설득이자 경고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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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바울과는 정반대로 자기의 특권을 남용한 하나님의 사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는커녕, 세상에 부덕을 끼쳐 하나님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즉 영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마친 것입니다. 그가 누구인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고만 계실 리가 없습니다. 만일 그런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무능한 하나님이라기보다 죽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역사가 빗나가면 반드시 이를 바로잡으시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입증하는 바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되찾는 것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거느리고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는 유가 아닙니다. 모세 때는 눈에 보이는 육적인 역사지만,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 역사의 그림자밖에 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내 말에 잘 따라 주지 않고, 모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조금 어려움이 닥친다고 해서 뒤에서 불평이나 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분명히 말해 두지만,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나와 여러분의 손에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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