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데모에게 강조하신 것이 바로 이 변화(중생)입니다. 이것은 물론 은혜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구체적인 보기로 안찰을 들 수 있습니다. 안찰이란 성령의 조화로, 이를테면 일종의 영적인 세탁을 가리킵니다. 혼자서 몇 해를 새벽 예배에 참석하면서 애써 매달려도 물리칠 수 없던 악의 세력도 이긴자의 손이 한 번 닿으면 말끔히 씻겨 나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이긴자를 통해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보고, 받았다고 하면서 정작 소중한 속사람이 언제나 그대로 있거나, 경우에 따라서 오히려 더 고약해졌다면 이런 맹랑할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날 인류는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이 절망을 소망 가운데 인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먼저 서고, 또 남들도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구경꾼의 태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설마 아직도 이것이 참으로 내가 가야 할 진리의 길이냐, 아니냐 하고 망설이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 길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에서 남의 꽁무니만 좇으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면, 우선 주께서 섭섭히 생각하실 터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만일 아직도 여러분 중에 의심이 풀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