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한동안 보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기로 작정한 후에도 여전히 하늘의 만나로 그들을 먹여 살렸던 것입니다.

물론 사울에게도 전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내리지만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울 자신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한번은 블레셋 군과 싸울 때, 두려운 마음이 앞서 여호와께 힘이 되어주시길 간구하였더니, 여호와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삼상28:6) 사울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만 두려워했을 뿐, 일체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여전히 이스라엘 임금으로 군림했습니다. 만일 여기서 사울이 여호와께, “주님이시여, 당신께서 내 범죄로 말미암아 나를 멀리하시나이까? 그러시다면 내가 다스리던 당신의 백성을 위해 새 임금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간구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호와께서는 그때 비로소 당신이 진작 다윗을 후계자로 내정했다는 것을 알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행동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대뜸 갈아 치우면 땅에서 일어나는 혼란도 혼란이지만, 여호와의 위신도 깎일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5) 완전한 제사와 불완전한 제사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76 에덴의 메아리3권
Chapter 2

(마16:23)

이 말씀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 죽음을 며칠 앞두고 처음으로 당신이 십자가에 처참하게 매달려 죽을 것을 제자들에게 발설하였을 때, “그리 마옵소서.” 하고 간하는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의 수제자로 침식을 같이하며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베드로도 자기 스승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제자가 선생을 몰라보다니,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베드로가 못났거나 무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마 오늘날 유명한 신학박사를 베드로의 자리에 앉혀 놓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선생이 죽는다는데 말리지 않을 제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인간 된 도리로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스승으로부터 최대의 모욕을 당했습니다. 죽으려는 스승의 옷자락을 잡고 만류했다고 해서, ‘사단’이라고 하다니, 이건 또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하긴 이렇게 반문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망발일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물음도 주님의 말씀대로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마 여러분 중에는, “아니, 사람이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무엇을 먼저 생각하란 말인가?” 하고 반박하는 분은 없을 줄 압니다.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사람의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따로 있는 것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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