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다.
영의 일을 육적으로만 생각하여, 구세주가 오시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려니 하고 기대에 부푼 제자들이 당신이 죽는다는 말을 듣고 실망할 때, 주께서는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로 오시지 않을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요16:7) 옳은 말씀입니다마는, 이 말씀이 당시의 제자들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겠습니까? 오히려 원망스럽게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이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왕이 되면 한 자리 하려고 잔뜩 노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대체 주님은 무엇 때문에 죽어야 했을까요? 우주의 창조에 동참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제물이 되다니, 이런 못난 짓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마냥 조롱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한번 뛰어내려와 보아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에게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무능한가?” 영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는 어느 의미에서 당신의 뜻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귀의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전능하신데도 불구하고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