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주님이 생축이 되어 드린 신령한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그 대가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곧 생수의 성령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 성령은 사람을 통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고넬료에게 성령을 내리실 때에도 베드로의 손을 거치게 했던 것입니다.(행10:1 참조)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크게 일으키려면, 아무래도 그런 중개자를 세워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이긴자도 주께서 세운 이런 성령의 중개자입니다.
그를 통해 주의 피는 이슬같이 내리고, 불과 생수의 강한 은총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이 그의 입을 통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마음의 평안을 주게 마련입니다.(요14:26) 이 경우에 그는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말해 주게 되어 있습니다.(요16:13) 그러니까 모든 것이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혜의 연결을 받아 하나님의 영으로 움직이는 자가 비로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됩니다.(롬8:15)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6) 예배에 대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태도는 천층만층이지만, 이것을 크게 둘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공경하며 사는 사람들이 그것입니다. 전자의 생활 태도를 인본주의적이라고 한다면, 후자를 신본주의적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