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상 앞에 절하는 등 큰 죄악을 저지른 결과, 저들이 당대에 당한 환난도 환난이지만, 대대로 저들은 “세상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져 환난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렘24:9)

어떤 사람은, ‘아니 우상 앞에 절 좀 했기로서니, 그렇게까지 당해야 하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대적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모세 율법 제1조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20:3)고 당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 제1조를 범하고 어떻게 그 기도가 상달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선과 악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겠습니까? 자고로 선악의 개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요컨대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것이 선이요, 하나님의 일에 거역하는 것이 악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과 악을 하나님 본위로 해석해야 올바른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가치 기준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정해지며, 또 그래야 합니다. 즉 얼마나 하나님께 충성하여 그 영광을 드러냈느냐 하는데 따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어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기독교의 윤리와 세상의 도덕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이런 데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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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습니다. 이 양자는 법도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양자가 다 숭상하지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즉 기독교 윤리에서 보면 예레미야를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보다 큰 부덕이 없지만, 세상의 윤리는 이에 대하여 매우 관대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느냐?” 우리에게는 이러한 물음이 불필요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기독교적 윤리관(倫理觀)을 갖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3) 주님과 시험

성경에는 주께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언뜻 보면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시험이란 우리네 죄인이나 받는 것이지, 주께서 어떻게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4:1) 여기서 말하는 ‘그때’란 주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고 나서, 전도의 길에 오르기 전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30년 동안의 사생활을 마치고 이제 하늘의 도를 전파하는 공생활(公生活)에 접어들기 전에 일단 시험을 거쳤던 것입니다. 천지 창조에 동참했던 주께서 왜 포교(布敎)에 앞서 시험을 당했을까요?

본문 말씀에 의하면,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갔다고 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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