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

性)이 모자랄지도 모릅니다. 아니 덕성이 모자라는 것 자체가 그다지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안목으로 볼 때 인간은 다 죄의 무거운 멍에에 짓눌려 있는 새까만 숯덩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씻기 위해 주께서 피를 흘리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믿음이 독실하다고 해서 택함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 세대의 여러 가지 여건에 따라 가장 적임자라고 인정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은 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귀족 출신이요, 잘생기고 머리가 좋아(단1:4)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지혜로 눌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신임을 얻게 되자, 친구들을 지방 장관으로 삼아 자기 기반을 닦고(단2:49) 총리로서 이들을 손발로 부려 치리에 만전을 기했던 것입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함을 받은 것은 그가 남달리 기력이 장사여서 블레셋 군을 쳐부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고, 주께서 박식하고 박력 있는 반역자 바울을 크게 들어 쓰신 것은 그가 이방인에게 새로운 하늘의 도를 전하는데 적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을 보면 그 세대의 특징을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육을 입고 있는 이상 허물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하나님의 사람 때문에 시험에 떨어지는 경우도 간혹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에까지

200 에덴의 메아리4권
Chapter 21

세상 모럴(도덕)을 앞세우는 데서 오는 폐단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경우에는 손해를 보는 것은 떨어지는 장본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람은 이런 일이 없도록 각별히 조심해야겠지만, 양떼들은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가 그렇게 되어 있으므로 사실을 그대로 전할 뿐입니다. 아무튼 사람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우리들의 상식이 되어 있지만, 여러분이 곧잘 말려드는 함정이기도 합니다. 가롯 유다가 떨어진 것도 요컨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인간 예수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나쁜 본보기라고 하겠습니다. 그 후 주의 역사에는 크고 작은 무수한 ‘가롯 유다’가 나타났습니다. 누가 되고 싶어 하필 가롯 유다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도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장담은 못합니다. 베드로도 한때 작은 가롯 유다였으니까요. 자기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주님을 부인하였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베드로도 미처 몰랐던 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언제나 자기반성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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