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

22. 믿음과 행위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어느 한 구절에 얽매여서는 안 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총체적인 입장에서 해석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외곬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예컨대 성경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하루 24시간 내내 기도로 세월을 보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믿는답시고 일은 하지 않고 기도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목구멍에 거미줄을 쳐야 할 것입니다.

그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엄숙하고 순수한 심정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뭐니 뭐니 해도 주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릴 때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그런 심정으로 주님을 섬기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결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에는 언제나 여유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성전의 주인이신 주께서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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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2

바 ‘성전세’를 지불한 이야기가 있는데,(마17:24-27) 우리는 이런 데서도 주님의 융통성 있는 일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불필요하게 남의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싫어 이렇게 행동하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할례 폐지론’을 들고 나온 바울이 편의상 디모데에게 할례를 몸소 실시한 것과도 맥이 통하는 데가 있습니다.(행16:3)

또한 성경에는 서로 상반되는 뜻을 나타낸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예컨대 믿음과 행위에 대한 가르침을 놓고 볼 때, 어느 한 구절만 강조하면 본의 아닌 오해를 하기에 꼭 알맞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엡2:8-10) 이 말씀은 구원관의 본질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행실이 착해서가 아니라 믿음에서 비롯되며, 이 믿음은 ‘하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선하면 얼마나 선하겠습니까? 인간의 행위는 거의 다 타고난 성격과 주어진 환경 ― 교육 수준, 생활 정도, 이해관계 등등 ― 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보면, 설사 어떤 사람이 선한 행위를 했다손 치더라도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가 개입될 구석은 극히 적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행실이 착해야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 막말로 행위는 망나니라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 물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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