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

성과도 선이 닿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어도 주님을 섬긴다는 사람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한시 바삐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다.”(사59:1-2)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주시는 데 제약을 받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제약이란 곧 우리의 ‘죄악’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 빠져 있을 때에는 도움을 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죄악이란 무엇입니까? 마귀의 편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하나님의 역사에 제동(制動)을 가하는 것입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19:9) 이것은 엘리야가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에게 쫓겨 굴 속에 피신했을 때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지만, 우리가 곁길로 갈 때 언제나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아무개가 게으름을 피워 제단에 나오지 않고 대청마루에 선풍기를 틀어 놓고 누워 있을 때, 하나님은 “이 아무개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고 말씀하시며, 박 아무개가 심방을 가지 않고 장 보러 갈 때, 하나님은 “박 아무개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고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담길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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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

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간직할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하며, 이것은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힘써야 할 분야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집안에 가만히 앉아 생명의 불로초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선물인 믿음은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생명의 불로초는 얼마면 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값으로 따지기에는 너무나 비싼 보물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라고 따질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몸뚱이를 다 묶어 바쳐도 살 수 없습니다. 아니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불로초를 손에 넣기 위해 얼마나 힘쓰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주님에게 시간을 얼마나 바쳤습니까? 할 일 다 하고 나서 나머지 시간을 바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은 기도를 얼마나 했습니까? 기분이 내키는 대로,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그런 기도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도는 여러분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끊기면 여러분은 살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십일조를 떼어먹은 일이 없습니까? 또 자기가 쓸 것을 다 쓰고 남은 데서 동냥 주듯 몇 푼 명색이나 유지하기 위해, 그것도 인색한 마음에서 바치는 사람은 없습니까? 주님은 여러분의 동냥을 바랄만큼 가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 제일주의(第一主義)로 살아야 합니다. 즉 보고 듣고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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