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계6:11) 이 수가 차서 원수 마귀를 완전히 꺾어야 하늘나라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수를 채우는 역사가 오늘날 바로 이 단상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 모인 여러분은 다 목숨을 바쳐서 너나없이 순교해야 하느냐? 그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우리는 특별한 은총 가운데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주께서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웃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믿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이웃이요, 또 하나는 믿는 이웃입니다. 에덴성회의 식구들이 바로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그럼 믿지 않는 이웃에 대하여 우리가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무엇일까요? 그들을 생명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전도가 주님을 기쁘게 하여 많은 죄를 가리며, 기도에 응답을 받는 하나의 조건이 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은 관용(寬容)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우리는 그를 이해하기가 쉽고, 따라서 너그럽게 보아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싹트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저들을 사랑하기는커녕 미워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22 에덴의 메아리4권
Chapter 1

예수를 믿으면 금기(禁忌)가 많습니다. 즉 성령을 거스르지 마라, 혈기를 내지 마라, 하고 온통 하지 말라는 것투성입니다. 그런데 이 ‘하지 말라’는 요구에 그치지 않고, 하라는 주문도 여간 많지 않습니다. 예배에 자주 참석하여라, 전도에 힘을 기울여라 등등, 아무튼 여간 귀찮지 않습니다. 사실 은혜를 받았으니 망정이지,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하라’ 또는 ‘하지 마라’ 하는 가르침은 요컨대 ‘사랑’ 하나에 흡수되며, 따라서 사랑 하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하였으며, 사랑이 있으면 온유하여 질투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연히 덕을 이루게 된다고 했습니다.(고전13:1, 4)

그런데 세상에서는 기독교의 사랑을 불교의 자비(慈悲)나 유교의 인(仁)과 같이 하나의 기본적인 덕목(德目)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입니다. 기독교 자체가 도덕 이상의 생명의 종교이고 보면, 사랑도 덕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마5:44)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다니, 원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즉 우리가 원수로 생각하던 자가 원수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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