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어버렸을 뿐입니다.

죽음이란 육신에서 혼이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일단 육신을 떠난 혼이 다시 육신에 깃들면 장본인은 살아나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 예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요11:43)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이런 재생(再生)이 아니라, 육신이 질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주께서 재림하실 때 주의 생명, 곧 성령을 받은 자들이 홀연히 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고전15:51)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마28:1-3) 이 천사는 일찍이 마리아에게 주님의 잉태를 예고한 가브리엘 천사장입니다. 하늘에서는 주님이 태어났을 때부터 부활하실 때까지 줄곧 이 천사장을 시켜 보호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 천사장이 주님의 육적인 장막을 순식간에 변화시켜 버렸습니다. 무덤 속에 세마포만 남고 주의 시체가 없어진 것은 이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에 대하여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영의 세계에 어둡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의 부활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어떻게 된 걸까요? 영의 세계를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심지어 신학자나 교역자들 중에도 기독교의 진수인 이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이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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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지 않습니다. 바울은 부활의 원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며,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관하지 못할 줄을 앎이라.”(롬6:8-9)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을 모시고 죽으면, 그리스도가 사신 것처럼 우리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은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혼이 육(肉)을 떠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인간의 혼은 언제까지나 살아 있게 마련입니다. 다만 그 혼이 육의 장막에 있을 때 하나님의 편에서 움직여 영원한 빛 가운데 거하느냐, 아니면 그 혼이 마귀의 편에서 움직이다가 영원한 암흑 속에 떨어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육신은 혼을 담는 그릇에 불과한 것으로, 그릇은 깨어져도 혼은 그대로 남게 됩니다. 성경에 “육은 무익하다.”(요6:63)고 말한 것은 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간수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결국 부활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그렇게 쉽게 몸에 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베드로를 비롯한 주의 제자들과 측근들의 움직임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과 날마다 침식을 같이하다시피 하면서 주님의 귀한 말씀을 직접 듣고 놀라운 일거일동(一擧一動)을 목격했으나, 주를 메시아로 거의 믿지 않았다는 것이 행동에서 드러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만두고 수제자인 베드로의 경우를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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