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심오한 사상이 깃들어 있는가 하면, 평범한 대화 속에 서릿발 같은 경고가 가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구절도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이 성경입니다.

하루는 주님을 따라 전도에 나선 제자 한 사람이,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집에 다녀와야겠다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자식된 도리로서 당연한 일이며, 주님은 마땅히 허락해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이 장사를 지내게 하고, 너는 나를 따라 오라.”(마8:22)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상주가 되는 장본인은 물론, 옆에서 함께 듣던 다른 제자들도 어안이 벙벙하여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버지의 장사도 지내지 말고 전도를 하란 말인가?” 당연한 의문이자 항의이기도 합니다. 아니 이것은 분명히 부모를 공경하라는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주님은 그렇게 말씀했을까요? 주님은 법도의 경중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과 부모에게 효도하는 두 가지 법도 중에서 전자를 앞세우고 계신 것입니다. 두 가지 다 소중한 일이지만,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가려야 할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하나의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죽은 사람들이 장사를 지내게 하라.”는 이 ‘죽은 사람들’이란 물론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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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당신을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물론 영적인 의미로 하신 말씀으로,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즉 숨을 쉬고 살아 있기는 있지만 영적으로는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보신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개념(의미)이 달라집니다. 기독교에는 이렇게 고고(孤高)하고 싸늘한 데가 있습니다. 또 그래서 비난도 받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세상 것과 하늘의 것을 혼동하는 데서 오는 괜한 소리입니다.

이때 만일 그 제자가 아버지의 장사를 치렀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만큼 하나님의 일에 지장을 가져오는 반면에 불신자들과 행동을 같이하는 동안에 심령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주께서 그 제자를 집에 돌려보내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장사지내는 기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닌데….” 하고 여전히 마땅치 않게 여기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역시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이런 사고방식에서 떠나야 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큰일 같지만 하나님에게는 하찮은 일일 수 있고, 또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하찮은 일도 하나님께는 큰일인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면서도 한편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까지 주님을 열심히 따른 보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제자인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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