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서 담판을 하려고 했으나, 베드로는 만나 주지도 않았습니다.(갈1:19) 아직 바울의 기반이 온전히 닦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바울을 따르는 무리는 눈사람을 굴리듯이 늘어났으며, 그 중에는 베드로를 따르던 자들도 상당히 많이 끼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안찰을 하여 성령을 부어주고, 병자를 고치는 등, 권능도 베드로 못지않았을 뿐더러, 말씀이 새롭고 오묘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의 세력이 커지고 베드로의 추종자들이 바울에게 점점 더 많이 쏠려 이제 양쪽이 힘의 균형을 이루게 되자, 베드로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불가불 어떤 용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즉 협상할 시기가 무르익은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 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종으로 언제까지나 대립과 반목을 계속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 무력부터 양측에서는 열띤 교리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즉 ‘할례 지지론’과 ‘할례 폐지론’이 팽팽히 맞서 결말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 담판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처음에 베드로를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지 14년 후의 일입니다.(갈2:1) 그러나 이때 바울은 교리도 교리지만, 지지 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베드로와 바울을 위시해서 양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