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6

36.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이렇게 쓰신다

―세대교체에 즈음하여

하나님의 섭리는 깊고 오묘하여, 인간의 머리로는 좀처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섣불리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논평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죄 많은 인간이 취할 바 겸손한 태도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직 심령이 어리기 때문에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가 철부지임을 드러내 보이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 좀 더 하나님을 두렵게 섬겨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자기의 영혼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싸움의 연속입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나와 주님과의 거리입니다. 즉 나와 주님의 사이가 날마다 좁혀져가고 있으면 남이 뭐라고 하건 바람직한 일이며, 나와 주님과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면 남이 아무리 받들어 모셔도 실로 한심한 노릇입니다. 주님은 우리더러 좁은 길을 가라고 가르치고,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눅18:8)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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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

는 안 됩니다.

자고로 하나님의 역사는 새벽에 크게 일어났습니다. 즉 하나님은 동틀 무렵에 큰 은총을 베풀고, 또 많은 역사를 행하였습니다. 내가 새벽 예배를 중요시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이 고난당하신 것도 새벽이고, 부활하신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그리고 역대의 선지자들이 큰일을 한 것도 대체로 새벽이며, 사울이나 다윗과 같은 이른바 기름 부음 받은 왕도 새벽녘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당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하여 육적으로 역사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이들 하나님의 종들은 되도록 많은 사람을 죽여야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따라서 자기도 유명해지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후의 신약 시대는 이와 정반대로 되도록 많은 사람의 영을 살려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따라서 주의 종들도 공로가 커지게 됩니다. 이 영을 살리는 가장 큰 직분을 맡으신 분이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즉 주님은 죽어 가는 뭇사람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을 트기 위해 몸소 십자가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살리는 직분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나 베드로도 남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고생하고, 또 그처럼 참혹하게 죽어갔습니다.

주 전과 주 후의 양상이 이렇게 다른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시대에 따라 정반대로 작용한 경우지만, 신, 구약 시대를 통틀어 한결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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