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

하고 마침내 우상까지 섬기며 하나님을 외면하는 추태를 부렸으니, 이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편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쳐들어갔습니다. 만일 이 싸움에서 여호수아가 패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첫 대결이 여리고성에서의 싸움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 도성을 비롯하여 많은 성읍을 차례차례 무난히 점령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셋째 단계, 즉 가나안의 원주민을 모조리 쳐부수는 마무리 작업을 온전히 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나안 원주민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조리 잡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여호수아가 철저히 이행하지 못했던 것입니다.(삿2:20-22)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 미쳐, 여호수아 당시에 살아남은 원주민의 후손들이 살던 팔레스타인 지역 주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소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거기 하나님의 섭리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 그 보응은 이렇게 철저하고 또 두려운 것입니다.

그럼 어찌하여 여호수아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인정사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놈도 살려주고 저 놈도 놓아주다 보니,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준행하지 못하게 되어, 온전한 안식을 얻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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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8

나님의 축복과 저주는 이와 같이 자손만대에 미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이상은 육적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누리는 안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마는, 영적인 가나안, 즉 인간이 죄에서 놓여나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누리는 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도 세 단계의 시련을 겪고 이겨야만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참고 견디며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며, 셋째 단계는 마귀를 소탕하는 군대의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는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는 이긴다.”(계17:14)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부르심을 받아야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시달림을 받은 것처럼 성도로서의 고난을 감당해야 하며, 또 그들이 원주민과 싸워 이긴 것처럼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인도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도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가나안 원주민을 정복한 육적인 사령관이 여호수아였던 것처럼, 천년왕국에 들어간 연후에 아마겟돈 전쟁에서 마귀를 소탕하는 영적인 사령관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마지막 종, 이긴자입니다.(계2:26, 14:16 참조) 여호수아의 경우도 그렇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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