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말입니다. 그들은 성경(구약)에 정통하여, 이런 질문쯤에 대답이 막힐 리가 만무합니다. 주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다윗은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주님이 그의 자손이 될 수 있느냐?”(마22:45)
주님은 영적인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영의 세계를 잘 모르는 저들은 여기서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이들도 역시 사두개인과 마찬가지로 창피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불학무식한 줄로 알았던 주님은 유식한 저들의 선생님이 되고도 남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모두가 성령의 조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은 물론이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보다도 먼저 계셨습니다. 아니 우주의 창업에 여호와와 함께 동참하신 주님이십니다.(창1:26) 다시 말해서 주님은 육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영적으로는 다윗의 증조할아버지보다도 더 어른이십니다. 그런 분이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 지구의 한 모퉁이에 오실 때 다윗의 자손의 옷(육신)을 잠시 빌어 입었다가, 다시 하늘에 오르실 때 그 옷을 벗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우주를 지으신 주님을 상기해 보십시오. 해답이 스스로 나올 것입니다.
그럼 어찌하여 주님의 영적인 질문에 사두개인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손을 들고 말았을까요? 이들은 율법주의자로 영의 문제를 깊이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의 세계는 율법으로 아무리 따져봐야 알 수 없습니다. 저들이 주님을 처형한 원인이 여기 있었던 것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