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사61:1-2) 그런데 고향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귀 밖으로 흘려보냈을 뿐만 아니라,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얼마 전까지도 톱질이나 대패질을 해서 겨우 먹고살던 사람이 웬 설교냐?” 하는 투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경을 일단 덮어놓고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당신네들 보아하니, ‘의원아, 너를 고치라!’는 속담대로, 나더러 남의 참견을 하기 전에 자기 앞가림이나 제대로 해야 한다면서 내가 가버나움에서 행한 이적을 보여주기를 바라는구려. 하긴 선지자가 고향에서 어찌 환영을 받을 수 있겠소.”(눅4:23-24) 아닌 게 아니라, 저들은 모두 예수가 가버나움에서 이적을 많이 행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신기하게 여겨 구경하러 회당에 모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라는 이적은 행하지 않고, 설교부터 하려 드니 흥이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도 제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상대편에서 마음문을 굳게 닫고 주님을 목수로만 보는데, 제대로 말발이 설 수 있겠습니까? 주님도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으면 맥을 못 씁니다. 저들에게 기사와 이적을 보여주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아무리 놀라운 일을 해 보여도 저들은 하나의 구경거리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 섭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지, 이적과 기사로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