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있습니다. 그 후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바울을 위시하여 성령을 받은 몇몇 사도들이 4복음서의 내용을 많이 보충하기는 했으나, 그들이 받은 성령이 불의 한 증거에 그쳤기 때문에 거기에는 자연히 한계가 있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도 아직 더 보충할 여지를 남겨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밧모 섬에서 사도 요한에게 주신 주님의 계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은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2:17)

여기서 말하는 ‘이름’은 물론 박 아무개, 이 아무개 하는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경륜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즉 불의 한 증거가 아니라, 불과 생수와 이슬 ― 이 세 증거의 보다 강한 보혜사 성령으로 역사하는 이긴자가 나타나면 사도 바울보다도 더 깊은 말씀이 쏟아져, 그 역사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진리 가운데 인도하며, 주의 뜻이 더욱 분명히 부각되게 마련입니다. 이긴자는 물론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될 일을 알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비로소 주님은 세 증거의 다른 보혜사 성령을 충만히 받은 이긴자를 통하여 이 땅에서 생전에 못하신 말씀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긴자는 상대방의 신앙 단계에 따라 새로운 말씀을 서서히 터뜨리게 됩니다. 이것은 바울도 마찬가지여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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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상 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뵙고 새로운 지시를 받았으나 이 사실을 14년 후에야 발설하고, 그나마 그 내용은 상대방이 감당치 못할까봐 밝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젖을 주고, 좀 자라면 죽을 먹이고, 이가 돋아나면 밥을 주는 것처럼, 영의 양식인 말씀도 상대방의 소화 능력을 고려하여 차츰 깊은 내용을 들려주게 됩니다. 영적인 꼴을 먹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전도할 때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대하고,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할례 받은 사람에게는 할례 받은 사람처럼, 무할례자에게는 무할례자처럼 대하여 융통성을 보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나도 아직 여러분이 영의 단계가 어리기 때문에 보류하고 있는 말이 많습니다. 아니 이긴자에게 준 ‘흰 돌’에 기록된 이름에 대한 내용은 아직 거의 입 밖에 내지 않고 있습니다. 감당치 못할 말은 안 하니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서서히 터뜨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계에서는 주께서 근 이천 년 전에 하신 말씀의 내용도 잘 알지 못하여 절절 매는 형편이며, 여기에 좀 색다른 해석을 첨가하면 대 신학자로 추앙을 받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하시지 못한 깊은 말씀을 터뜨린들 어떻게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강한 성령의 파이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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