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니다. 죄의 내용은 당사자가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율법은 적어도 양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얼버무려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일정한 규례가 없으며 각자의 처지와 여건에 따라 다르게 됩니다.
가령 심한 신경통으로 잘 걷지 못하는 노인은 몇 달 만에 간신히 한 번 교회에 나와도 하나님은 그를 기특하게 여기지만, 건강한 사람이 날마다 교회에 나와 살다시피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귀히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같은 죄도 신앙의 체계가 선 사람이 범했을 경우와 교회에 나온 지 며칠 되지 않는 사람이 저질렀을 경우는 그 경중이 다르게 마련입니다.
이와 같이 자유의 율법은 각자의 정상을 참작하지만, 모세의 율법은 그런 융통성이 없습니다. 즉 모세의 율법은 결과에 치중하고 자유의 율법은 동기에 치중합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을 어기면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려 그 피가 정결한 만큼 죄 사함을 받지만, 자유의 율법을 범하면 자동적으로 연결되던 은혜가 끊기며, 회개하여 다시 은혜 연결을 받아야 합니다. 즉 말씀에서 감동을 받았건 감각적으로 신비로운 은혜 체험을 했건 그 후에 죄를 지으면 성령이 떠나 가슴이 냉랭하고 주님과 거리가 멀어지므로 자유의 율법에서는 구태여 증인을 내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한 돌에 일곱 눈이 박힌 보혜사 성령이 살피시는 것입니다.(슥3:9, 4:10)
그러므로 성령의 은혜가 같이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유의 율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