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

나님을 찾아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엡2:8)

그럼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믿게 하실까요? 하나님이 마귀와의 싸움에서 인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이 당신의 편이 되어 마귀와 싸워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이 지으신 인간을 부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인간은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마16:2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도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을 선지자에게 지시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책입니다. 인간이 머리로 생각해 내어 쓴 책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필요로 하시는데,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요구를 저버리고 제멋대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은 하나님께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이 경우에 하나님은 인간을 지은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창6:6)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인간은 수동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독생자를 보내

244 에덴의 메아리6권
Chapter 26

어 우리를 구속해 주십사하고 부탁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진해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의 말을 믿고 따르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 요구를 받아들이면 기뻐하시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섭섭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뿐만 아니라 당신의 사람을 내세울 적마다 인간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우선 그 요구가 무엇인가를 알고, 다음에는 그 요구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으며, 40억이 다 하나님을 믿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즉 그 믿음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하나님의 요구에 따른 사람은 어느 시대나 극히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신본주의의 생활보다 인본주의의 생활이 훨씬 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하면 내가 싫어하는 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해야 하니, 그것은 불편한 생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길을 가야 합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5:15)

이처럼 천국은 좁은 길을 통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과 짝지어 호의호식하면서 편안히 가는 길이 아닙니다. 편안히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에덴의 메아리6권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