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

고 볼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자기 위주의 신앙 자세로는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는 생활입니다. 악을 이기려면 모든 일에 ‘나’를 나중으로 돌리고, 주님을 앞세워야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나무에 열매가 많이 달리려면 뿌리가 튼튼해야 하는데, 이것은 나무의 생명이 뿌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뿌리를 보지 않고 열매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말합니다. 한데 이것들은 모두가 뿌리에서 자양분을 빨아들여 이루어진 성과입니다. 즉 그 원천은 어디까지나 뿌리에 있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역대의 주의 종들은 조금만 크게 역사하면 곧 이름이 알려집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독교 역사상 굵직굵직한 이름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그 장본인에게는 바람직한 일이 못됩니다. 주의 종은 뿌리의 역할을 하여 주께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는 낮추고 대신 주님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주의 종이 할 일입니다. 신앙에서는 자기 일만 충실히 하면 그것으로 족하며, 남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는 숨고 남을 드러내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자기보다 좀 나은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중상모략을 하여 끌어내리려고 한다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영력이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에덴성회보다 더 신령하고 은혜스러운 데가 있어 그리로 간다면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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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말리지 않겠습니다. 은혜를 따라 간다는데 어떻게 말릴 수 있으며, 또 말린다고 될 겁니까? 여러분, 어디든지 좋으니 가볼 데가 있으면 다 가보십시오. 나보다 인격이 훌륭하고 학식이 풍부한 목회자는 많이 만날 수 있을 테지만, 나를 통하여 나가는 권능과 말씀은 어디 가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찾아볼 수 있다면 그건 내가 거짓말쟁이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격과 학식 ― 이것도 좋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이것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된다면 벌써 하나님의 뜻은 옛날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종교는 인격과 학식의 차원을 능가합니다. 인격과 학식으로 말하면 나만큼 부족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통해 나가는 것은 온전히 주의 것입니다. 질그릇에 담긴 보배가 귀한 것이지, 질그릇 자체는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천 년 가까이 바울의 신학에 의존해 왔습니다. 이것은 그 동안에 바울을 능가하는 말씀을 터뜨리는 주의 종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타났던들 오늘날 기독교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어떤 시점에 있는가를 잘 알아야 하며, 또 자기 신앙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 신앙이 지금 어떤 땅에서 자라고 있으며, 뿌리가 얼마나 깊이 박혔는가?”를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자기 신앙이 자갈밭에서 자라고 있다면, 하루속히 옥토로 옮겨 심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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