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2

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러 이 땅에 오신 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즉 신약 시대에는 주의 종들이 고생을 낙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종이 바울입니다. 그는 육을 버리고 영을 위주로 살기 위해 고생을 자청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연단이 필요합니다. 풍파 속에서 믿음을 꿋꿋이 지켜나가야만 비로소 주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평안한 가운데 남의 대접을 받으면서 구원받으려는 것은 너무나 안이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계는 어떻습니까? 외관상 잘 믿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의 다 육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믿음이 온전히 박힐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물질이 넉넉하게 되면 세상으로 흐르고 하나님을 멀리하기 쉽습니다. 그런가 하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은 남의 처지와 비교하여 곧잘 낙심합니다. 모두가 마음이 병들어 있는 징조입니다. 즉 주를 위해 자기의 환경을 조절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있는 사람은 그만큼 주를 위해 더욱 헌신할 기회가 많이 주어진 것이므로 이를 선용해야 하며, 없는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가난하여 은혜 받기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므로 이를 십분 이용해야 합니다. 즉 그 가난을 주의 것으로 보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내가 누군데…” 하는 자의식(自意識)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육을 좇는 데서 오는 교만한 생각으로, 은혜 받는 데 큰 장벽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육을 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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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2

는다면 그토록 빗발치는 눈총 속에서 도저히 이 역사를 감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환난과 핍박이 없으면 생기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불러서 강하게 하시고, 없는 자를 내세워 있게 하십니다. 즉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강한 자나 부유한 자를 통하여 이루는 것은 당신의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 넓은 길을 가려는 생각을 마십시오. 우리는 모름지기 주님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위하는 신앙 자세를 버려야겠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합니다마는, 우리는 그 예술보다 더욱 긴 영원한 생명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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