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

을 말똥거리면서 은혜 오기를 기다리면 오히려 은혜가 오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노력 없이는 오지 않지만, 노력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물론 이런 신비로운 은혜 체험을 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그 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간직하는 것이 더욱 소중합니다. 다시 말해서 은혜를 받는데 그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은혜를 받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도 내일이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벌써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리는 분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뜨겁게 달아오르던 가슴이 어느새 냉랭하게 식어버려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은혜를 간수하지 못하고 쏟아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받고 나서 범죄하면 그 은혜가 곧 끊겨 버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은혜가 아주 떠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 체험을 한 후에는 범죄하지 말고, 주님께 더욱 충성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를 간직하는 비결입니다. 은혜를 받기만 하고 열성을 내지 않으면 조만간 그 은혜는 희미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만큼 분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잘 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찬송을 부르고 십자가를 생각하십시오. 믿음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은 두 유형(類型)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86 에덴의 메아리6권
Chapter 34

하나는 말씀에 선 신앙이고 또 하나는 체험에 의존한 신앙입니다. 이 양자는 확연히 잘라서 말할 수는 없지만, 전자는 이론이 서 있는 반면에 은혜 체험이 부실하고, 후자는 은혜 체험이 많은 반면에 이론이 약한 경향이 있습니다. 예컨대 아볼로의 경우가 전자에 속하고, 베드로의 경우가 이 후자에 속합니다. 이상적인 것은 이 양자가 병행되는 경우로, 바울 같은 분이 이에 속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해 있습니까? 한 번 조용히 생각해 보십시오.

대체로 신비로운 은혜 체험과 믿음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체험하면 믿음이 자라고, 믿음이 자라면 은혜 체험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이것은 가장 바람직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은혜 체험에는 적지 않은 부작용이 따르기도 합니다. 신령한 체험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특별히 기억하시는 줄 알고 교만에 빠지거나, 체험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식이라도 된 줄 알고 낙심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부질없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주님과 나 사이가 얼마나 가까이 좁혀져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다듬고 은혜로 다지는 것도 요컨대 주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것을 제거하고,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죄는 주와 멀어질 때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의 율법에서는 주님과 자기가 멀어지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주님과 멀어지면 기도하기 위해 눈을 감아도 세상의 온갖 잡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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