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5

령(救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주님은 오늘날과 같이 교회의 단상에서 설교하신 것이 아니라, 사방에 돌아다니면서 주로 노방 전도를 하였습니다. 이때 주님은 우선 사람들을 주변에 모으기 위해 신유의 은사를 위시하여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으며, 이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왔다 하면 금세 많은 병자들이 줄을 이어 모여들었으며, 성한 사람들은 예수가 병 고치는 이적을 구경하기 위해 역시 떼를 지어 운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으로서는 병 고치는 일보다도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더 소중하고 시급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병을 고쳐 주고 설교를 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금세 시시하게 생각하여 뿔뿔이 흩어지기가 일쑤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이 어떻게 설교다운 설교를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한껏 비유로 몇 마디 운을 떼고 마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마치 약장수가 약을 팔기 위해 음악이나 요술을 하여 길가는 사람들을 잔뜩 모아놓고 나서, 나중에 약을 팔려고 하면 사람들이 슬금슬금 사라져 버리고 몇 사람 남지 않는 광경을 연상케 합니다. 주님을 약장수로 비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 당시의 모습을 좀 더 선명히 머릿속에 그려보기 위해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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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5

여러분, 구경꾼들이 거의 다 사라진 쓸쓸한 빈터에 여기저기 듬성듬성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열심히 설교하는 주님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오늘날 주님을 구세주로 받들고 우러러보지만, 당시의 예수는 이웃 사람들에겐 목수 아저씨이고, 친척들에겐 형이요 조카이며, 또 친구들과는 네니 내니 하는 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는 파격적인 언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런 예수의 모습이 콧대 높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예수가 바알세불에 씌었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당시에 모세의 율법에서는 안식일을 철저히 지켜, 이날에는 종들에게도 일체 일을 시키지 않고 경건히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안식일 같은 것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모세의 율법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이단시되다 못해 마귀(바알세불)로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물론 주님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주님은 이처럼 모세의 율법을 예사로 짓밟아 버렸을까요? 저기에는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에 주님의 라이벌(경쟁자)은 모세였습니다. 주님과 모세를 라이벌 사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아무튼 주님은 모세를 눌러야만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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