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7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저마다 웅성거리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은 우물가에서 이방 사마리아 여인에게서 서슴지 않고 물을 받아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유대교 율법으로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사마리아 여인은 요새의 속된 말로 하면 대폿집 접대부와 비슷한 여자였습니다. 주님이 이런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데 그치지 않고 물까지 받아 마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그 밖의 제자들은 또 웅성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럴 수가 있나?” 그들은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저들은 주님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치 않는 데서 오는 웅성거림이요 의심인 것입니다. 만일 저들이 주님의 존재를 100% 분명히 알았던들 “우리는 안 되지만 그런 일쯤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할 수 있으며, 또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아리송했기 때문에 이렇게 의혹을 느꼈고, 의혹을 느꼈기 때문에 더욱 주님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요컨대 자기의 척도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판단하는 데서 오는 폐단이었습니다. 즉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주님의 언동을 선지자의 차원에서 비교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움직임을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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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해할 리가 없습니다. 척도가 다르니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님은 무지한 상대방으로 하여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가불 선지자의 선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16:12)고 말씀하시고, 다른 보혜사 성령에게 당신에 관한 일을 많이 의탁하였습니다. 즉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16:12)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당시에는 이런 진리의 말씀들이 돌보다도 더 딱딱하여 좀처럼 소화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하셨는데, 이런 이야기는 소화하기 어려웠습니다.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갈 수 없다는 말씀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은 요컨대 주님이 아니라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을 올바로 섬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을지 모르지만, 믿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긴자를 분명히 알고 계십니까? 머리로는 일단 알고 있는 것으로 자처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하나의 관념(생각)에 그치고, 실제로 하나의 신념, 즉 믿음으로 굳혀 있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경우처럼, 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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