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인간의 아들 사이에는 목수와 학자라는 겉모습과는 달리,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가 희한한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예수를 밤에 몰래 찾아갔습니다. 낮에 찾아갔다가 남들이 보면 위신이 깎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께서 “다시 나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인간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면 그만이지,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하긴 주님의 말씀을 육적으로 받아들이면 옳은 질문입니다. 주께서 대답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그런 일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3:10-13)
여기서 ‘우리’란 주께서 하나님을 당신과 한데 묶어서 지칭한 것입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당신은 이스라엘의 선생인데,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군요. 나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는데.” 하고 점잖게 책망하고 나서 “하늘에 올라간 자는 나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올라갈’이 아니라 ‘올라간’이라는 시칭(時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