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유다를 예언서의 악역으로 내던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유다는 주님이 제자들 중에서 가장 신임하고 돈주머니까지 맡긴 측근 중의 측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은 배반하여도 유다는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것이 도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주님을 기어이 팔아넘기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만저만한 배은망덕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하였다.”고 말씀하시고, 유다를 마귀에게 내어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적으로 일하실 때와 사적으로 움직이실 때가 달랐으며, 또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주님은 일반 사람들 앞에서는 당신의 체모를 위해 되도록 모세 율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지만, 사사로이 행동하실 때에는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자유 율법의 주인공으로, 모세도 주님을 통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요10:8) 그러나 이런 이치를 모르는 대중 앞에서는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체라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께서 성전세를 낸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며,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 아버지 집에 아들이 들어가는데 세를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불필요한 말썽을 일으키기 싫어 성전세를 냈던 것입니다. 주님은 영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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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이요, 육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므로 생활 자체도 이중성(二重性)을 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주님의 이런 이중성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가롯 유다는 그 대표적인 인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주님과 무화과나무

오늘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이천 년 동안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이 입증해 주기 때문에 우리가 비교적 믿기 쉽지만, 주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목수 노릇을 하면서 겨우 살아가던 시골 청년이 불쑥 나타나 몇 가지 이적과 기사를 한다고 해서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언동을 가까이서 지켜본 제자들까지도 긴가민가하게 생각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나는 여기서 무화과나무에 대한 주님의 언동을 예로 들어, 하늘과 땅 사이의 움직임을 잠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막11:12-14)

주님이 하나님의 도를 전하기 위해 돌아다닐 당시는 오늘날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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