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매식하기가 간편치 못해 끼니를 거르기가 일쑤였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 근방에 있는 베다니 마을에 이르렀을 때 몹시 시장하여 무화과나무의 열매로 요기를 하시려고 두루 살펴보았으나, 아직 계절이 일러 열매가 맺혀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물론 나무의 탓이 아니며, 나무에게 잘못이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주님은 하도 시장하여 은근히 화가 난 김에 앞으로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저주했습니다.
이 저주는 주께서 무심코 던진 것이며, 무모하고 천진스럽기까지 한 언동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는 저주는 나무가 나무 구실을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화과나무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말씀이 그대로 응해졌기 때문입니다. 즉 이튿날 베드로가 보니 그 무화과나무는 뿌리까지 말라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주님은 하나님께서 종으로 들어 쓰시는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는 아들이므로 그 말에 응분의 권위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위신도 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 저주가 다만 저주에 그치고 아무 반응이 없다면 주님은 체통이 서지 않으며, 따라서 하나님 자신의 권위에도 손상이 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설사 나무라 할지라도 저주를 면치 못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도 기독교의 원리가 무엇인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