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문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일체이십니다. 주님은 선지자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런 말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주님 당시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들에게는 초라한 시골 청년이 거침없이 던지는 이런 말들이 당돌하고 무엄하게 들리기만 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주님이 율법을 예사로 범하고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요10:8)라고 했을 때에는 자기가 혹시 잘못 걸린 게 아닌가 하고 불안하였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모두가 율법주의자들이었으므로 그럴 만도 합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100% 믿지 못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5) 주님과 삭개오

삭개오의 이야기는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그가 복음서에 이름이 오르게 된 것은 주께서 기억하여 자주 입에 올렸기 때문이며, 그런 의미에서 삭개오는 복된 사람입니다. 더구나 삭개오는 돈 많은 세리장, 그러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세무서장쯤 되는 사람으로, 백성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세무서원은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지만, 주님 당시에는 기생만큼이나 천하게 여겼습니다. 세리들은 로마의 앞잡이로, 백성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꾼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이 방면에 얼마나 유능하면 세리장이 되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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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그런 삭개오는 주님의 소문을 듣고,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주님은 사람들로 겹겹이 에워싸여 있었으므로 키가 작은 삭개오는 도저히 주님을 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뽕나무 위에 올라가 주님이 지나가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이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따라서 별로 치하할 것도 못됩니다. 그러나 이 조그마한 열성을 주님은 가상하게 보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를 믿는 비결의 하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 기억을 받으려면 반드시 큰 공로를 세워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부가 헌금한 동전 한 닢을 귀히 보시는 주님입니다.

주님은 뽕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쳐다보고, 그 날 밤에 그의 집에 가서 유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삭개오의 중심을 뚫어 보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바라보기조차 어려운 분이 자기 집에서 묵어가겠다니, 그보다 더 반가울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이 천한 세리장 삭개오를 대하는 태도는 유대의 관원 니고데모를 대하는 태도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삭개오와 니고데모는 똑같이 주님을 존경했으나, 전자는 체면 불구하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뽕나무 위에 기어 올라가 주님을 똑똑히 보려고 했으며, 후자는 위신 때문에 밤에 남의 눈을 피해 주님을 만나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을 대하는 주님의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주님의 숙소에 찾아오고, 주님은 삭개오의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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